[손에 잡히는 책] 명화로 보는 사건
[국민일보 2004-04-08]

◇명화로 보는 사건 (시민법의학)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에 등장하는 여인은 허리를 굽히고 농작업을 한 탓에 십중팔구 변형성 요추증에 걸렸을 것이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리기 위해 늘 술에 절어 있었다. 당시 안과의사들은 ‘해바라기’의 불타는 듯한 노란색을 보고 고흐가 황시증에 걸려있었음을 암시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가슴이 임신한 여자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것은 물론 오른손을 불룩해진 배 위에 얹어놓고 왼속으로 배의 밑을 받쳐들고 있다. 모나리자는 임신 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법의학자인 문국진전 고려대 교수는 명화 속에 감춰진 법의학적 양상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해 우리의 평범한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명화의 새로운 모습을 다양하게 짚어낸다. 미술관에 갇혀있던 그림에서 사건을 도출해 법의학 현장으로 불러낸 남다른 안목을 만날 수 있다. (해바라기·1만8000원).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책정보

책소개

명화의 정적인 아름다움과 범죄 현장의 사건성이 어우러져 독특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사건과 명화와의 만남'인데, 저자 문국진 교수는 우리가 잘 아는 명화들을 통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법의학 지식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명화들이 모두 끔찍한 장면만을 묘사한 그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에곤 실레의 <에두아르 코스마크> 등 무척 다양한 그림들이 등장한다. 명화에 사건을 접목함으로써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명화 법의학'이라는 법의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소개

문국진 - 호는 度想(도상)이고 필명은 柳浦(류포)이며 국내 최초로 고려대학교에 법의학 교실을 창설하였다. 1925년 평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및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이면서 국제법의학회 한국 대표, 미국 및 영국 법의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 문화상, 대한민국 학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최신 법의학」「법의 검시학」「의료 법학」등의 의학서적을 비롯하여, 법의학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병과 사인을 살펴본「바흐의 두개골을 열다」「모차르트의 귀」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 이 외에도 명화와 의학 접점을 모색한「명화와 의학의 만남」에서 그림에 대한 남다른 안목과 식견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술관에 갇혀 있던 그림들을 법의학 현장으로 불러냈다. 명화의 정적인 아름다움과 범죄 현장의 사건성이 어우러져 독특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주는 이 책을 통해 문국진 교수는 일반 시민들이 법의학 지식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책 표지 글

‘죽음’이라는 긴박하고도 엄숙한 최후의 순간으로 몰고간 엄청난 일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도 없거니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사연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지난 날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위대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왜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의 궁금증과 더불어 이를 풀기 위한 여러 가지 상상이 나래를 펴게 된다. 즉 주검의 얼굴에서는 삶의 진실과 죽음의 허무함에 대한 철학이 스며나 인생 항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가 저절로 태어난다. 이것이 전해진다면 우리네 인생살이에 귀중한 삶의 나침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귀중한 메시지를 전할 길이 없다. 많은 주검과 대화를 해온 법의의사로서 그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전하기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렇게 소중한 사자(死者)들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며 국민들의 법의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어떻게 열 것인가 하는 것이 나로서는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공부하면서 거장들의 그림 가운데는 사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안성맞춤인 그림이 상당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작가들의 의도는 그런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은 자유가 아닌가? 따라서 해석도 작가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의미에서 한 학문을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것이니 작가들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작가의 대부분이 이미 고인이 되어 하늘나라에 계시는 분들이라 사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쓰이는 것이라면 기꺼이 찬성하리라 확신하였다. - 서문 중에서